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아흔 번째 여정은, 팔만대장경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남 합천군으로 간다.
병풍 같은 산자락 아래, 굽이굽이 물길 따라 이어진 동네 합천은 포근한 산과 호수처럼 누구나 푸근한 인상으로 반겨준다.
옛 방식을 지키며 추억의 맛을 이어가고, 자연에 녹아들어 산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한 풍경.
그리고 추석을 앞둔 합천의 넉넉한 인심까지. 가을 들녘처럼 풍성한 가을 합천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 합천의 물길 따라 시작하는 아흔 번째 동네 한 바퀴
합천의 젖줄인 합천호에서 아흔 번째 여정의 첫발을 내딛는 배우 김영철.
언제고 한 폭의 수묵화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합천호를 내다보고, 그 물길과 이어진 황강을 따라 걷다 우연히 아침 일찍부터 목선 카누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이 많고 풍경이 수려하기로 유명한 합천은 200명이 훌쩍 넘는 주민들이 취미 삼아 타기 위해 본인들이 직접 주문 제작한 목선 카누를 가지고 있단다.
얼떨결에 목선 카누를 얻어타게 된 배우 김영철. 힘차게 노를 저으며 합천 한 바퀴를 시작한다.
▶ 물길 따라 이어진 합천 동네
- 어머니들의 지혜가 담긴 “자갈 유과”
물길을 따라 합천을 돌아보다 냇가에서 뭔가를 하는 어머니들을 발견한 배우 김영철.
궁금함에 내려가 보니, 양동이 한가득 자갈을 줍는 모습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 자갈로 유과를 만들어 다가올 명절을 준비 중이란다.
같이 자갈을 주워 마을에 도착하니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에서 한창 유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주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유과를 만드는 방식이 조금 신기하다.
바로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자갈을 깔아 유과를 굽는 것.
그 옛날 식용 기름이 귀하던 시절, 마을 어르신들이 냇가에서 자갈을 주워다 불에 달궈 유과를 만들던 방식이란다.
집집마다 조금씩 만들어 명절을 준비하던 것이, 이제는 담백한 맛과 독특한 방식이 입소문을 타서 합천은 물론 이웃 지역에서도 주문이 들어와 온 마을이 함께 유과를 만들고 있단다.
옛 어르신들의 지혜를 고이 간직하며 유과를 만드는 마을의 일곱 자매 같은 어머니들을 만나본다.
▶ 합천에만 있다! 소나무 속껍질로 만드는 “송기 떡집 부부”
냇가 마을을 벗어나 합천의 읍내로 발길을 옮긴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분주한 풍경. 떡집 앞도 문전성시다.
그 중 유난히 사람들 발길이 향하는 한 떡집에 들어서게 된다.
고추 빻고, 기름 짜고, 그리고 “이것”을 사러 왔다는 사람들.
바로 명절이면 합천에서 꼭 빠뜨리지 않고 먹는다는 송기떡이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 첩첩산중에 있던 합천 땅에서 떡을 만들 때 구할 수 있는 건, 약초와 나무껍질 뿐이었단다.
그러다 소나무 껍질이 찰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송기떡을 만들어오기 시작했단 합천 사람들.
이제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음식이 됐지만, 이 방앗간에선 여전히 옛 맛을 이어오고 있다.
37년간 손수 레시피를 연구하고 발전시켜 송기떡으로 수많은 상도 받았다는 자부심 넘치는 남편과 언제나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영원한 보조 아내.
그들이 평생 땀과 열정으로 빚어온 합천의 오래된 맛, 송기떡을 맛본다.
▶ 합천 읍장의 참새 방앗간 “풀빵 팥죽집”
시끌벅적한 장 구경을 하다 우연히 간판도 없이 그저 “풀빵, 국수”란 글자만 가게 앞에 덩그러니 붙어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안에 들어서 보니 60대 어머니가 혼자 풀빵을 굽고 있다.
내부는 오래된 긴 테이블과 의자, 옛날 교과서와 장날 버스 시간표가 전부.
갓 시집왔던 열아홉 살 시절부터 시어머니와 난전으로 시작해 50년 동안 장사를 해왔다는 어머니가 꾸려온 공간이란다.
그런데 이곳의 풀빵은 조금 특이하다.
풀빵 안에 팥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갓 구운 풀빵 위로 걸쭉한 팥죽을 얹어주는 모습.
이곳만의 특별한 메뉴와 나흘 내내 직접 통팥을 끓여 팥죽을 만드는 주인 어머니의 오랜 정성에 수십 년째 단골들이 줄을 잇고 있단다.
합천 오일장의 명물, 풀빵 팥죽집을 만나본다.
▶ 합천의 새로운 힐링 쉼터 “대장경 기록문화테마파크”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의 고장으로 알려진 합천.
그런데 최근 합천을 가는 사람마다 입 모아 추천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해인사로 향하는 소리길 초입에 위치한 대장경 기록문화테마파크다.
해인사에 소장되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팔만대장경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접하고 느낄 수 있도록 새롭게 만든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팔만대장경 조형물이다.
어떤 곳인지 궁금한 마음에 매표 후 들어서니 탁 트인 정원이 펼쳐진다.
합천의 수려한 산과 폭포를 축소해 옮게 놓을 듯한 모습부터, 아기 소나무를 품은 푸른 소나무까지 수많은 볼거리를 눈에 담으며 산책을 하다 대장경을 쉽고 재미있게 만나볼 수 있는 체험관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대장경이 만들어진 과정을 새로이 보고, 직접 대장경판을 찍어보는 인경 체험을 해보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팔만대장경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본다.
▶ 붉은 단풍 옷으로 갈아입는 “홍류동 계곡”
대장경 테마파크를 나와, 합천을 감싸 안은 가야산에 닿게 되는 배우 김영철.
산으로 들어서자 계곡에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두 귀를 가득 채우고 마음까지 씻겨주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계곡의 이름은 “홍류동 계곡”.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계곡의 물길도 온통 붉은 옷을 갈아입는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곳이란다.
이곳에서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갖고 길을 걷던 배우 김영철은 산에서 내려오는 한 산꾼을 만나게 된다.
합천의 산들에서 버섯을 따오던 길이라는 60대의 남자.
산 동네에서 나고 자라 산 타는 것과 버섯을 캐는 일이 천직이 됐다는 합천 토박이란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을 탄다는 그의 가방에서 나오는 올해 첫 가을 송이. 송이를 들고 그가 향하는 곳에 동행해본다.
▶ 산으로 맺어진 인연, 산꾼 부부의 “자연산 송이 버섯국” 한 상
함께 도착한 곳은 가야산 아랫마을.
이곳에서 남자의 아내가 한다는 식당에 들어서 본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남편이 산에서 버섯을 채취해오고 밭에서 직접 농작물을 길러온 것으로, 아내가 밥을 지어 운영해오고 있단다.
집안 어르신 중 스님들이 계신 덕에 자연스레 사찰 음식과 같이 오신채를 쓰지 않고 음식 맛을 내는 법을 배운 아내.
거기에 타고난 손맛과 정성이 더해 차린 30가지가 넘는 반찬은 모두 정갈하고 청정한 자태다.
그래서인지 해인사를 오가는 스님들과 산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 됐다는 부부의 식당.
오래된 집기와 식당 내부 풍경이 한결같이 살아온 그들의 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젊은 시절, 산에서 만나게 됐다는 천생 산꾼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가을철 합천의 별미인 자연산 송이 버섯국을 맛본다.
▶ 7대 종갓집 모녀의 평생이 담긴 술 “송주”
다시 산을 벗어나 물길을 따라 내려온 합천호 근처에서 커다란 한옥 고택 한 채를 만나게 된다.
궁금한 마음에 대문으로 들어서는 배우 김영철.
들어가자마자 반기는 풍경은 구들장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 앞에서 커다란 솥에 죽을 쑤고 있는 중년 여성이다.
알고 보니 이 집의 종부가 아닌 딸이란다.
무엇을 만드는 중인지 물으니, 200년 동안 이어왔다는 솔잎을 넣어 빚는 집안의 가양주, “송주”를 만들던 중이란다.
물을 넣지 않고 오로지 흰죽과 솔잎을 넣은 찐 밥으로만 빚어 만들기가 까다롭고 고돼 며느리들이 물려받지 않았다는 송주.
5년 전 6대 종부인 어머니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부터 딸이 그 명맥을 잇게 됐단다.
치매로 어린아이가 됐지만, 아직도 술 빚는 날이면 대청마루에 앉아 술맛을 직접 보며 나지막이 조언한다는 어머니.
오래된 합천의 명가를 지키는 모녀의 인생이 담긴 송주를 만나본다.
너른 산 아래 풍요로운 물길을 품은 동네,
경남 합천에 찾아온 풍성한 가을과 추석 풍경은
오는 10월 3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제90화. 풍성하다 그 동네 – 경남 합천] 편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