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 곳간이 열렸다!
꽃게, 전어, 멸치 그리고 바닷바람이 키운 꽃까지
서해안을 풍성히 채우는 선물들
꽃게가 돌아왔다! – 전북 고군산군도 무녀도
군산 앞바다에는 47개의 무인도와 16개의 유인도가 무리지어 있는데 이를 고군산군도라 부른다.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곳은 세종 때 수군부대가 있어서 군산도라 불렸는데. 수군부대가 옥구군 진포(지금의 군산)로 옮겨가면서 옛 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군도가 됐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고군산군도 앞바다는 긴장과 설렘으로 분주하다. 여름 내내 지속됐던 꽃게 금어기가 해제됐기 때문이다. 흔히 꽃게하면 봄이 제철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봄에는 암게, 가을에는 수게가 제 맛이란다. 가을 꽃게는 껍데기가 두껍고 단단하며 윤기가 흐르고, 속이 꽉 차 살이 달다. 고군산군도 중에서도 무녀도를 찾아간다. 꽃게 조업하는 이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젊은 얼굴. 바다가 좋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최석현(35) 선장이다. 바다일은 위험해서 안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꽃게잡이를 한 지 5년이 되었다고. 어머니 이강실 씨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 섬 밖으로 나가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아들이 잡아온 꽃게로 그가 제일 좋아하는 꽃게장을 담가준다. 제철을 다시 맞이한 꽃게 밥상을 만나본다.
집나간 입맛 돌려주는 햇전어 – 충남 서천 홍원항
서천 홍원항은 아담한 항구지만 일 년 내내 갓 잡아온 수산물이 넘치는 곳이고, 특히 9월이면 전어배들로 더욱 북적인다. 몸이 빠른 전어는 고전소설 <별주부전>에서 용왕의 말을 토끼에게 전하던 물고기였다는 설이 있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 서울에서 파는데 귀천의 구분 없이 모두 좋아했다. 맛이 뛰어나 이를 사려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전어(錢魚)라 했다”고 기록돼 있기도 하다.
봄에 산란한 전어는 9월부터는 겨울을 준비하며 온몸에 지방을 한껏 축적하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일 년 중 가장 맛있고 뼈조차 부드럽다 한다. 그러나 전어를 잡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전어떼는 움직임이 워낙 빨라 물때를 맞춰 나가도 쉽게 잡히지 않는단다. 그래서 전어잡이에는 반드시 두 척의 배가 필요하다. 속도가 빠른 4t짜리 어선이 전어떼를 앞질러서 그물로 휘감으면 10t급 운반선이 뒤따르며 도와야한다. 전어는 잡을 때도 속도전이지만 팔 때도 속도전이다. 성질이 급해 빨리 죽기 때문에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활어운반차로 전국에 보내야 한다고. 전어조림, 전어회, 전어회무침, 전어구이까지 햇전어 밥상을 만나본다.
작다고 놀리지 말아요, 서해 멸치 – 충남 보령 오천항
보령 오천항이 오래전 당나라와의 교역창구였던데는 이유가 있다.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덕에 방파제 등 별도의 피항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기 때문. 이곳에선 요즘 가을멸치가 한창이다. 서해에서도 멸치가 나오냐며 갸웃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미 25년쯤 전부터 본격적으로 멸치조업을 했단다.
멸치는 업신여길 멸(蔑)자를 쓴다. 육수를 내거나 볶아서 먹을 뿐 그다지 쓰임새가 다양하지 않고.‘멸치가 생선이면 00는 00다’는 놀림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홍명완 선장에게 멸치는 아주 맛있는 당당한 먹을거리다. 홍선장은 동생 홍성훈 씨의 선단까지 도맡아. 오천항에서 멸치 작업선 4척, 운반선 2척에 선원 20명으로 구성된 선단을 이끌고 바다에 나간다. 그는 그물로 끌어올린 잔멸치를 배 위에서 팔팔 끓는 바닷물에 즉시 삶아내고(자숙), 운반선에 옮겨 항구로 날라 건조시킨다. 그래야 갓 잡은 멸치를 원물에 가장 가깝게 먹을 수 있다고. 이 일은 멸치가 들기 시작하는 8월부터 11월까지 매일 계속된다. 바다일이 홍선장 몫이라면 육지에서 멸치 건조는 동생 홍성훈 씨 담당이다. 이렇게 완성된 멸치를 아버지 홍영기 씨가 판매하기까지. 멸치는 온 가족의 생존을 건 희망이 됐다. 신선한 멸치를 잡는데서 그치지 않고 멸치가 우리 밥상에서 최고의 맛을 내는 것까지 고민한다는 홍선장을 만나본다.
바닷바람에 꽃은 활짝 피어나고 – 충남 태안 노지꽃농장
태안 몽산포해수욕장은 깨끗한 백사장에 끝없이 펼쳐진 솔밭이 아름답고 다양한 물새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해변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태안 토박이 정동옥, 이대선 모자의 노지 꽃농장이 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태안은 꽃의 고장이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꽃들의 생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33년 전 시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땅에 꽃을 심기 시작한 것이 이 농장의 시작이었다는 동옥 씨. 7년 전엔 아들 이대선 씨까지 귀농했다. 어머니께 농장을 물려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40여 종의 꽃을 키워. 세상의 모든 꽃을 키워보는 것이 목표라는 대선 씨. 6,500여 평의 노지에서 과꽃, 리시안셔스, 천일홍, 기린초에 맨드라미까지. 태안 바닷바람이 키워내는 꽃농장을 둘러보고, 솜씨 좋은 모자가 꽃농사 중 힘을 얻는다는 밥상을 받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