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6일, 오늘은 초복(初伏)이다. 삼복 중 첫 번째 복날로 여름의 시작을 뜻한다. 복날의 복(伏)자는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하여 굴복시켰다는 뜻이다. ‘삼복더위에 소뿔도 꼬부라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초복은 무더위에 체력이 소모되는 때이다. 또 복날은 봄에 심은 벼가 쑥쑥 성장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복날마다 벼가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고 하여 초복이면 벼에게 '한 살 생일'이라고 말한다. 농경사회가 주를 이뤘던 우리나라에서 초복이 상당히 중요한 절기로 자리매김해왔다. 예부터 조상들은 복날이면 술과 음식을 준비해 계곡이나 산을 찾아 더위를 잊는 풍습이 있었고, 오늘날도 여전히 복날이면 많은 이들이 삼계탕 등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영양을 보충해주는 음식, 즉 '보양식'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우리에게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농한기를 맞은 농부들에게 보양식은 지난 농사일에 대한 '보상'이자 다가올 무더위를 대비할 '보신'인 것이다. 이번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농사일에 수고한 이들에게, 마을을 지키는 어르신들에게,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에게, 바다 일을 앞둔 이들에게 바치는 초복 날의 푸짐한 한상을 맛보려 한다.
농사일에 수고한 이들을 위한 복달임 음식
논농사와 딸기농사가 주를 이루는 논산 노성면의 병사마을. 이곳에서는 풍물놀이가 한참이다. 바로 벼의 한 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함이다. 벼가 폭풍으로 자라는 시기인 여름의 절기 중 하나인 초복에는 벼가 한 뼘만큼 자라고, 그것에 대한 표현으로 벼가 한살이 됐다는 말을 한다. 병사마을 사람들은 초복이면 풍물놀이와 함께 몸에 좋은 음식을 해 먹는 풍습이 있다. 마을 내에 있는 저수지를 통해, 또 마을 밖 강경시장에서 보양식에 넣을 몸에 좋고 맛있는 식재료를 구한다. 음식의 맛은 어떠한 재료를 썼는지 이전에 누구와 먹는지에 따라 천차만별 다양해진다는 말이 있듯, 함께 땀 흘린 이들과 나누는 음식 자체가 보양식인 병사마을 사람들의 초복맞이 복달임 음식을 만나러 가보자.
병사저수지는 병사마을의 식재료 창고다. 이곳에서는 맑은 물에서만 서식한다는 귀한 민물새우가 흔한 식재료다. 민물고기 중 보양식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가물치 역시 빠지지 않는다. 강경 시장에서 공수해온 홍어까지 더해 복달임 음식을 준비한다. 홍영선 씨가 가물치 특유의 비린내를 잡는 특급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나섰다. 우선 비늘을 벗긴 가물치에 밀가루 물을 바른다. 감초와 산초 달인 물에 들깨가루, 가물치를 넣고 고춧가루 양념을 풀면 매콤하고 얼큰한 가물치양념곰탕이 완성된다. 관절이 약한 어르신을 위해 생선 껍질을 이용해 홍어껍질채소묵도 만든다. 하지감자와 민물새우를 함께 부친 민물새우감자전부터 시원한 맛으로 즐기는 홍어맑은탕까지. 농사일에 수고한 병사 마을 사람들의 초복 맞이 즐거운 하루를 함께 해보자.
어르신들의 건강한 여름 나기를 위한 아낙들의 복달임 음식
농한기인 여름의 한 가운데에도 아낙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수확을 끝낸 마늘을 일 년 내내 두고두고 먹기 위해 짚에 엮어 툇마루에 묶어둔다. 또 초복 날이면 마음 맞는 아낙들이 함께 몸보신 위한 영양 가득한 음식을 만든다. 충남 홍성은 최대 돼지 사육 지역인 만큼 이 지역에서 최고로 즐기는 보양식 재료 역시 돼지다. 다리살, 갈빗살, 족발 등 돼지는 버릴 부위 없이 통째 음식 하는데 사용된다. 따로 피서지를 찾지 않아도 건강한 음식 먹고 뒷산에 올라 그늘에 앉아 쉬는 것이 최고의 피서법이라는 광천 아낙들. 사실 이들에게 최고의 여름나기는 몸보신 위한 음식을 만들어 어르신 댁을 방문하는 일이다. 무더위를 잘 보내고 건강히 가을을 맞이했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돼지 복달임 음식을 차려내는 광천 아낙들을 만나러 가보자.
돼지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요긴하게 쓰이는데, 아낙들이 제일 먼저 돼지를 뜨거운 물에 삶아 잡내와 불순물을 제거한다. 여기에 감칠맛을 더하는 새우젓을 넣고 삶는다. 삶아낸 돼지 삼겹 부위는 다른 양념 없이 찰떡궁합인 새우젓에 찍어 수육으로 즐기면 된다. 돼지 족을 넣고 뽀얗게 우린 돼지족탕은 마을 사람들의 단골 몸보신 음식이다. 매콤한 양념을 듬뿍 발라 숯불에 구운 등갈비 하나면 흥이 절로 난다. 여기에 부드러운 앞다리 부분에서 살코기만 발라내 입맛을 돋우는 레몬즙과 부추를 더해 어르신들을 위한 여름 별미 앞다리살냉채를 만든다. 액막이 음식이자 더위를 식히는데 도움을 주는 수수팥단자까지 더하면 마을 어르신들의 무탈한 여름 나기를 위한 돼지 보양식 한 상이 차려진다.
‘손 큰 엄마’ 김태순 씨의 가족을 위한 복달임 음식
공주시 계룡면에는 뙤약볕이 내리 쬐어도 약초 거두는 일을 멈추지 않는 김태순 씨가 있다. 초복을 맞아 집을 찾은 가족들에게 해줄 음식 때문이라는데... 오랜 세월 음식을 만들었지만 아직도 그녀에겐 요리란 신나고 재밌는 일이라고 한다. 초복 복달임 음식을 위한 메인 식재료는 바로 오골계. 오골계는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독소를 배출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기록 되어있어 복날을 위한 식재료로 안성맞춤이다. 시집 왔을 때, 3대가 함께 어울려 살 정도로 북적거렸지만 이제는 지난 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태순 씨가 홀로 남아 이 집을 지키고 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가족들에게 음식을 차리는 일이 태순 씨에게 기쁨이자 위로가 된다. 무더운 여름을 앞둔 가족들을 위해 상다리 휘어지게 건강한 음식을 차리고자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는 태순 씨 하루를 엿본다.
초복하면 제일 많이 생각나는 음식은 단연 백숙이다. 하지만 김태순 씨만의 식재료를 넣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백숙을 만든다고 한다. 깊은 산 속에서 활엽수에 붙어 자라는 말굽버섯이 그 주인공. 돌처럼 단단해 육수 낼 때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구수한 맛을 내는데 맞춤인 재료다. 또 여기에 태순 씨의 특급 비법인 닭발을 넣어 더 찐득하고 깊은 맛을 내는 말굽버섯오골계백숙이 된다. 오골계 가슴살을 잘게 다진 떡갈비는 손주들을 위한 할머니가 만든 별미. 3년 묵은지와 등갈비를 한 솥 가득 푸짐하게 넣고 여기에 자식들 향한 어미의 마음까지 가득 담아 끓인다. 홍어찜과 홍어무침까지 만들면 모인 가족의 몇 배가 와도 배불리 먹고도 남을 양이 상 위에 차려진다. 자식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엄마 태순 씨의 복달임 음식을 맛보러 가자.
소난지도 섬마을 사람들의 복달임 음식
충청남도 당진에는 육지에서 배로 십분 남짓 가면 닿는 섬이 있다. 바로 소난지도. 섬마을 사람들에게는 섬을 둘러싼 바다가 보물창고이며, 썰물이 지나간 갯벌 역시 이들만의 장터이다. 잡고 캐는 모든 산물들이 맛난 음식을 위한 식재료가 된다. 본격 가을이 되면 소난지도 사람들의 주 수입원인 바지락을 캐느라 바쁜 하루를 보낸다. 이들에게 본격 어업을 앞둔 시기인 초복은 든든하게 몸보신 음식을 먹어 영양을 비축해두는 날이다. 보기만 해도 약이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영양 가득한 제철 생선 농어와 쓰러진 소도 벌떡 일어나게 한다는 낙지는 이곳 어민들의 여름 나기를 위한 필수 보양 재료다. 싱싱하고 건강한 식재료는 그 자체만으로 몸에 보약이 되기 때문에 어민들은 제철 산물로 복달임 음식을 먹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결이라 말한다. 소난지도 마을 사람들의 웃음꽃 가득 핀 초복 날을 함께 하고자 한다.
7월이 제철인 농어를 싱싱하게 즐기려면 바로 회를 떠서 먹으면 된다. 그렇지만 농어 껍질이 두꺼운 편에 속해서 뜨거운 물을 부어 살짝 데친 농어숙회는 그냥 회보다 더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남은 농어로는 전복을 비롯해 영양 듬뿍 들어있는 해산물을 넣고 농어백숙을 하면 소난지도 사람들의 최고 보양식이 완성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바지락과 펄에서 캐낸 진주, 낙지를 볶아 꼬시래기에 싸먹으면 이만한 바닷가 별미가 없다. 여기에 섬에서 자란 쪽파로 김치를 담가 붕장어에 넣고 조린 파김치붕장어조림까지. 힘든 바다 일도 고생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어 내일이 더 힘난다는 소난지도 섬마을 사람들의 서로를 향한 응원이 담긴 복달임 한 상을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