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꼼의 세상


가도 가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해발 천고지. 하늘로 길게 뻗은 나무만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을 한 시간을 헤매고서야 드디어 움직임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소리를 따라가 보니 실망스럽게도 보이는 것은 고라니의 뒷모습... 그런데 바로 그때, 우거진 숲 너머에서 윤택을 불러세우는 한 남자. 백발의 자연인 안용혁(66세) 씨다. 한 손에 당귀를 들고 유심히 윤택을 보더니 다짜고짜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는 그. 예리함 뒤로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가진 그는 과연 어떻게 이 산에서 살게 되었을까?

 

김포에서 자라 해병대가 친숙했던 자연인은 6년간의 해병대 부사관 생활을 마치고 아내, 딸과 함께 인천에 보금자리를 잡았다. 제대 후 사회생활을 멋지게 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과 달리, 직장은 쉽게 잡히지 않았고, 여러 일용직 끝에 아내와 함께 분식 포장마차를 하게 되었다. 특별한 요리 실력은 없었지만 부지런했기에 생활은 꾸려지던 차, 달걀 튀김을 우연히 시도했다가 큰 인기를 얻어, 벌이가 꽤 괜찮아졌단다. 하지만 남편이 변변한 직업이 없던 것을 못마땅해하던 아내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고, 우연히 근처 파출소에서 경찰 모집공고를 보고는 그 길로 공부를 시작했단다. 워낙 끈기가 대단했기에 밤낮없이 공부에 매달렸고 다행히 한 번에 합격했다고. 원칙주의자에다 성실했던 그는 파출소 생활을 얼마 하지 않아 본서 발령까지 받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단다. 교통조사계에 오래 근무하며 전국 뺑소니 검거 1위까지 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남모를 고충이 점점 커져갔다. 길가의 허무한 죽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고현장,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들과의 씨름... 스트레스는 극심해져갔고, 참혹한 사고의 잔상으로 악몽을 꾸는 건 부지기수, 불면증에 시달린 적도 많았다고... 하지만 책임감으로, 정의감으로 그 힘든 경찰 생활을 마무리하던 때, 그가 쓰러져버렸다! 신체검사 때마다 경고를 받았던 혈압이 한계에 달한 것. 퇴직하던 해 추석날, 갑작스레 쓰려져 119에 실려 간 그는 결국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팔다리가 마비까지 오고 말았던 것이다.

 

절망이 새로운 삶을 선물해줄 수도 있는 걸까? 퇴직 후 산에 살고 싶었던 막연한 꿈이 그 일을 계기로 실현되었다. 천고지의 청정공기와 물, 혈압에 좋은 당귀, 둥굴레 등 각종 약초, 운동을 위해 매일 하는 산행으로, 그는 현재 마비 증상을 회복했고, 혈압약도 먹지 않는다.

깔끔한 성격대로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텃밭엔 각 잡힌 듯 반듯하게 감자, 쑥갓, 고추, 옥수수 등이 있고, 혈압에 좋다는 차조기도 심어놓았다. 천고지라 작물이 산 아래보다 늦어 아직 풍성하게 열리진 않았지만 혼자 먹기엔 부족함이 없다는 자연인. 튀김장사를 했던 실력으로 각종 채소튀김을 하는가 하면, 혈압에 좋다는 서리태를 갈아 콩가루 콩국수를 만들고, 작은 연못에서 직접 잡은 메기로 메기 매운탕도 능숙하게 끓여낸다. 태양열로 전기를 쓰는 그는 흐린 날을 대비해 직접 솔잎향 가득한 초를 만들기도 하고, 나무껍질은 퇴비로, 폐기름은 나무 보호용으로, 버려진 현수막은 손주를 위한 작은 게르로 만들며 잠시도 가만히 쉬지를 않는다는데...

 

이 산에서 건강은 물론 인생의 행복도 새롭게 찾았다는 자연인 안용혁 씨

 

 

나는 자연인이다.E360.190807.720p NEXT.m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