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아요, 그대, 자연인 김승열
운무가 자욱한 하늘에 닭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리는 고지대 산속!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25마리 닭들이 오가고, 툭하면 칠면조 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때때로 검은 털을 가진 큰 개가 목줄이 풀린 채로 온갖 산을 헤집고 다니기도 하는데. 이 자유로운 동물들의 주인은? 알이 큰 안경을 쓰고 분홍 신발을 신은 범상치 않은 차림의 남자! 자연인 김승열(60세) 씨다. 동물들 덕분에 심심할 틈 없는 그의 집에는 재미난 공간이 가득하다. 마당, 거실, 안방을 갖춘 산골 집에는 부모님이 쓰던 골동품이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고 곳곳에 가을꽃도 있다. 낭만 가득, 깔끔하게 정돈된 집은 그의 성격을 닮은 듯하다. 이 집이 완성된 건 6년 전 일이다. 처음에는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산으로 올라왔다. 텐트를 치고 지내다 비닐하우스 움막까지 만들어 생활을 시작했지만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 3일 동안 굶어서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는데. 그가 깊은 산속에 스스로 갇히는 삶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에서 신문보급소 직원으로 일하다 유명 신문사의 지사장을 맡게 된 김승열 씨. 그는 1년 만에 구독자 수를 7배나 늘게 할 정도로 꽤 능력 있는 지사장이었다. 매번 높은 실적을 올리고 신문 속 광고지의 수입도 괜찮아 큰돈을 벌었다. 당시 아내가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하자 바로 아파트 한 채를 선물로 사줬을 정도.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리던 20대 사장 김승열 씨. 하지만 꿈같은 행복은 길지 않았다. 갑자기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구독자 수가 급격하게 줄고 신문사도 휘청거리기 시작하는데. 그 무렵 인터넷 신문이 활성화되며 결국 사업을 정리하게 된다. 살길을 찾던 중 우연히 친한 후배의 사업투자 제안으로 2억 원의 돈을 과감하게 투자한다. 하지만 곧 사기인 걸 알게 되고 또 다른 지인의 배신까지 겹쳐, 노후자금을 하루아침에 몽땅 날려버렸다. 50대 승열 씨는 돈과 사람을 모두 잃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죽고 싶은 생각만 들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그는 죽음 대신 이 산을 선택했다.
자연의 품에서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 받고 매일 행복을 꿈꾼다는 승열 씨.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그동안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마다 다른 색을 가진 풀과 꽃들이 예뻐 보이고 잘 자라주는 작물들에도 감사하다. 외로운 산중생활을 함께하는 동물들과 지압판에서 발 마사지를 즐기는가 하면 개복숭아 나무를 흔들어, 직접 맛보며 재미를 찾는다. 이곳에서 처음 해보는 요리도 또 다른 재미다. 얼갈이배추 겉절이를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바가지 비빔밥과 자연인 표 고추장찌개. 그리고 한 폭의 동양화가 담긴 꽃 호박전까지. 대충 만든 듯해 보여도 맛은 일품인 그의 요리가 유쾌하다. 가족의 반대를 외면하고 산으로 들어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자연인. 산속에서 인생 후반전을 맞은 그가 가족에게, 또 자기 자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진심은 무엇일까? 자연인 김승열 씨의 이야기는 9월 18일 수요일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