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꼼의 세상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얻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 오관게(五觀偈) : 공양을 받기 전 외우는 게송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올리는 정성된 음식인 공양(供養)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고 맛을 음미하는 미식이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삶의 이치를 깨닫고, 만인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 이로움을 함께 나누는 마음의 음식. 

비울수록 채워지는 소박 하고 정갈한 절밥 한 그릇, 

그 속에 담긴 깨달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 밥으로 공덕을 쌓는 수행자, 공양주 

             - 지리산 화엄사 공양간을 지키는 마하연 보살의 자연을 담은 사찰 밥상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화엄사 공양간에는 ‘화엄사의 어머니’로 불리는 마하연 보살이 있다. 

공양간을 지키며 음식으로 스님들의 수행을 돕는 공양주로 살아온 지 28년, 

화엄사에서만 꼬박 16년을 보낸 마하연 보살에게 ‘공양간 3년이면 성불한다’는 말처럼

공양주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밥으로 공덕을 쌓는 수행자다.

공양주의 가장 큰 소임은 자연과 교감하며 삶의 이치를 깨닫는 것. 

화엄사를 품고 있는 지리산은 계절마다 온갖 재료들을 내어주는 가장 큰 곳간이다.

취나물, 쑥부쟁이, 오가피잎 등 제철을 맞은 산나물로 생생한 봄의 기운을 담은 ‘산나물버섯탕수’와 향긋한 봄과 그윽한 가을이 어우러진 산나물능이국수, 기다림과 정성으로 만드는, 화엄사의 별미로 손꼽히는 ‘버섯편’까지, 자연이 내어준 그대로 욕심내지 않고 정갈하고 조화롭게 한 상이 차려진다. 공양은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 그 속에 삼라만상의 지혜가 담겨있다

 

 

■ 공양이 곧 수행이다 – 진관사 스님들의 사찰 두부 음식에 담긴 깨달음의 의미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진관사는 조선 시대 수륙재를 지내던 곳으로, 두부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던 ‘조포사’로 전통이 전해오는 사찰음식의 명가다.

스님들이 출가 후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곳은 바로 공양간!

두부 하나를 만들 때도, 씨앗을 뿌려 가꾸고 거두어 맷돌에 갈고 끓이고 굳히는 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수많은 정성과 노고가 담겨있음을 알고, 그 감사함 앞에 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배우는 수행의 공간이 바로 공양간이다.

출가 후 50년 넘는 세월 동안 처음 마음 그대로 공양간을 지키고 있는 진관사 주지 스님인 계호스님에게 최고의 양념은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

550년 전통의 두부찜인 ‘포증’과 100여 년의 세월이 담긴 이벽동댁두부전골처럼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두부 음식과 일상식으로 즐겨 먹는 정갈하고 담백한 맛의 두부장아찌.

내 몸을 이루는 음식이 나를 만드는 기본임을 알고 공양과 수행이 하나임을 배우고 실천하는 진관사 스님들의 깨달음이 담긴 사찰 두부 밥상을 만나본다

 

 

 

■ 아주 특별한 인연  – 거제 해인정사 공양간의 노보살과 주지 스님의 이야기

 

거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해인정사.바닷가 절집 공양간에선 봄이면 바다로 나가 톳과 미역, 고리매 등 해초를 채취해 갈무리해두는 게 중요한 일이다.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든여덞의 노보살은 20년 넘게 이 암자에서 생활하며 공양간을 지키는 공양주. 고향인 여주를 떠나 낯선 거제까지 오게 된 것은 남다른 인연 때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열아홉에 출가했던 딸이 바로 이 암자의 주지 스님인 자원스님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를 암자로 모시고 오면서 모녀로 만난 속세의 인연은주지 스님과 공양주 노보살로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출가 후 10년 만에야 집을 찾아왔던 딸. 그 모진 세월을 눈물로 보낸 아버지는 일찍 먼저 떠나고,  ‘순두부’ 한 그릇의 깊고 진한 그리움이 남았다. 

평행선처럼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 딸처럼 살갑게 곁을 지켜주는 공양간 식구들과 더 큰 인연을 맺고 살아가며, 육지에선 미처 몰랐던 톳장아찌와 미역귀 튀김을 얹은 해초비빔밥에 고리매된장덖음까지 맛깔스럽게 만들어내는 지금,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것이 다 인연이고, 그 인연은 모두가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다.  

 

 

■ 공양은 나누고 베푸는 부처의 마음 – 평택 수도사 찾아가는 공양 이야기  

 

평택의 한 마을에 자리 잡은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공양은 곧 나눔의 의미라고 말하는 수도사 주지 스님 적문스님은 오래전부터 ‘찾아가는 공양’으로 사찰음식에 담긴 나눔의 실천 하고 있다.

예로부터 부처님 오신 날 사찰에서 만들어 먹던 느티떡 대신 화살나무 순인 홑잎으로 시루떡을 찌고, 봄기운 가득 담은 미나리강회에 방풍나물무침, 그리고 연근과 보리, 콩, 녹두, 참깨, 땅콩 등 곡식을 갈아 넣고 우유를 부어 끓인, 불가에서 깨달음의 음식으로 일컬어지는 유미죽까지, 부처님의 자비와 나눔의 의미를 담은 음식을 만들어 이웃 주민들에게 전달한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고 기꺼이 나누는 음식, 그 속에 진정한 깨달음이 담겨있다. 

 

 

한국인의 밥상 다시보기 458회

 

[458회]한국인의 밥상 - KBS

[공양, 밥으로 복을 짓다]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올리는 정성된 음식인 공양(供養)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고 맛을 음미하는 미식이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삶의 이치를 깨닫고, 만인의 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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