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꼼의 세상

 

 

세계적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램리서치가 연구개발(R&D)센터를 한국으로 완전 이전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와 미래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 위한 조치다. 특히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업체와 협업 및 공동 개발도 적극 추진한다.

일부 해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회사가 한국에 R&D센터를 세운 적은 있어도 본사 R&D 기능 전체를 이전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이 같은 결정에는 한국이 향후 10년 이상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기술과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깔렸다. 소자뿐만 아니라 소재·부품·장비를 망라한 반도체 생태계에서 한국이 글로벌 테스트베드이자 기술 허브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18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램리서치는 최근 이사회를 통해 본사 R&D센터를 한국으로 완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램리서치는 3년간 국내에 1800억원을 투자하고, 한국에서 500명의 연구인력을 신규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램리서치는 R&D센터 이전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TF는 서인학 램리서치코리아 회장이 맡았다. 서 회장은 40년 이상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에 종사한 전문가다. 램리서치의 국내 생산법인인 램리서치매뉴팩춰링코리아 대표도 역임하고 있다.

램리서치는 연매출 10조원이 넘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 회사다. 특히 반도체 웨이퍼에 불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해 회로 패턴을 만드는 식각장비 분야 세계 1위다.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네덜란드 ASML과 함께 세계 톱3 반도체 장비업체로 꼽힌다.

램리서치가 한국으로 R&D센터를 이전하는 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소자 업계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현 세대보다 두 단계 앞선 '차차세대(N+2)' 반도체 기술 개발이 목표인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해 원천 기술부터 개발을 해야 한다”며 “전에 없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1등 기업 간 협업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램리서치는 현재도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거리와 시차가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무엇보다 미래 반도체 기술을 신속하게 확보하기 위해 가까운 거리에서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려는 의도다.

램리서치는 특히 미국 R&D 인력이 이동하지 않을 경우, 아예 한국에서 신규 인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R&D센터 이전을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반도체 기술과 시장에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미래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램리서치 연구원들(자료: 홈페이지)>

 

램리서치는 한국 R&D센터 설립을 통해 자사 장비에 들어가는 부분품 국산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핵심 부품 국산화 비율을 75%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글로벌 장비업체의 R&D 투자로 일자리 창출과 인력양성은 물론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태계 활성화가 기대된다.

홍상진 명지대학교 교수는 “거대 외국계 장비기업이 한국에 R&D센터를 두는 것은 그만큼 국내 반도체 기술을 높게 평가한다는 방증”이라며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램리서치는 R&D센터 이전 결정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경기도 등과 한국 투자와 관련한 세부 사안을 협의 중이다. 경기도와는 빠르면 이달 말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이다.

램리서치 측은 R&D센터 한국 이전과 관련해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한편 램리서치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도 한국에 R&D센터를 세울 방침인 것으로 파악됐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는 현재 설립 시기, 규모, 방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

램리서치에 이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까지 한국 R&D센터를 구축하면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반도체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것은 물론 차세대 기술 초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 : 전자신문